당신의 여행은 언제인가요

 

 

회사와 일상 사이, 나만을 위한 도망

회사 옥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어느 날 오후. 바깥은 햇살이 가득한데, 내 마음은 흐리기만 하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메일, 촘촘한 회의, 끊임없이 울리는 메신저 알림 속에서 나는 오늘도 지친다. 왜 이렇게까지 바쁘게 살아야 할까? 점심시간에도 업무 생각을 놓지 못하고, 퇴근 후엔 집에 도착하자마자 널브러진다. 주말이면 겨우 숨을 고르지만, 그마저도 금세 지나간다.어느 순간, 나는 달력이 아닌 탈출구를 찾고 있다.

 

행동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그날 밤, 아무렇지 않은 척 노트북을 켜고 검색창에 썼다. "혼자 가기 좋은 여행지". 무심코 누른 링크 속, 조용한 숲속 마을 사진이 떴다. 햇살이 부서지는 작은 정자, 창문 너머 넘실대는 풀숲의 아름드리 나무와 초록. 그 사진 하나로 나는 단숨에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래, 나도 저기 가고 싶다. 이유 없이, 그냥 그 풍경 속에 잠시 있고 싶었다. 아, 나도 떠나고 싶다. 나조차도 몰랐던 내 마음이, 그렇게 드러났다. 일상이 아니라 감정이 여행을 먼저 시작한 셈이었다.

 

지친 일상에 쉼표 하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생각보다 감정적이다. 가고 싶은 곳을 고르는 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그동안 억눌려왔던 나의 감정과 욕구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고요한 숲에서 숨을 고르고 싶은지, 바닷가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해질녘을 바라보고 싶은지. 나는 그 모든 풍경을 꿈꾸었다.

 

혼자여도 괜찮아, 이건 나를 위한 여행이니까

인터넷 지도를 넘기며 ‘여기 좋겠다’ 싶은 작은 마을을 발견하고, 이름조차 생소한 지역의 숙소를 검색하고, 혼자 걷는 거리에서 조용히 내 숨소리를 느끼고 싶은지. 지도를 넘기며 ‘여기 좋겠다’ 싶은 도시를 저장하고, 작고 예쁜 카페를 찾아보고, 그곳의 날씨를 검색하며 어떤 옷을 입을지 상상하는 순간을 상상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말랑해진다 그렇게 계획은 아직 현실이 아니지만, 설렘은 이미 내 곁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일만 하는 인생 말고, 쉼표 하나쯤 있어도 괜찮아."

 

떠나기 전날 밤, 가장 설레는 순간

짐을 싸는 날, 오랜만에 여행 가방을 꺼냈다. 그 속엔 오래전 여행지에서 샀던 기념품이 여전히 있었다. 그 순간 또 한 번 웃음이 났다. 내가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위한 시간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쉴 틈 없이 앞으로만 달려왔고, ‘일정을 비운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위한 하루, 나를 위한 시간은 결코 사치가 아니었다. 짐을 싸며, 나는 ‘누가 보지 않아도 예쁜 옷’을 골랐다. 읽지 못한 책 한 권을 챙기고, 빈 노트와 펜도 넣었다. 그 안에는 계획보단 여유가, 일정보단 ‘멈춤’이 담겨 있었다.

 

잘하고 있어, 그 말 들으러 떠납니다

출발 전날 밤. 버스 티켓을 확인하고, 숙소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다시 읽는다. 여행은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될 것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다시 숨을 고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 나는 이 여행지에서 거창한 감동을 바라지 않는다. 이제 진짜 떠날 차례다. 일상이 버거워질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그런 기억을 만들러.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그곳에서 나 자신에게 해주기 위해서.